조너선 글레이저(Jonathan Glazer) 감독의《존 오브 인트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2023)》는 전쟁 영화도, 스릴러도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잔혹함이 얼마나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평범하게 작동할 수 있는가를 차갑게 보여주는 실험적 작품이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 수용소 담벼락 너머의 한 가정집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악명 높은 수용소의 사령관 루돌프 회스(Rudolf Höss)와 그의 가족이다. 이들은 고문과 학살의 현장 바로 옆에서 정원 가꾸기, 수영, 식사 같은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나 그들의 평온함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의 비극을 더 명확히 비춘다. 글레이저는 공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보이지 않는 잔혹함이 얼마나 더 섬뜩한가를 증명한다.

1.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세계 – 평온과 비극의 공존
《존 오브 인트레스트》는 전형적인 홀로코스트 영화의 문법을 완전히 거부한다. 카메라는 결코 수용소 내부를 비추지 않는다. 대신 관객은 철조망 너머 들려오는 비명과 연기, 그리고 그 위로 흘러가는 일상의 소음을 듣는다. 정원을 손질하는 아내,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버지, 마당에서 열리는 소풍 같은 장면들 — 그러나 이 모든 평온함은 담장 밖의 죽음과 교차하며 끊임없이 불편한 감정을 자아낸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잔혹함을 ‘부재’의 형태로 제시하며, ‘보이지 않음’이 오히려 상상력을 통해 더 큰 충격을 준다는 연출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는 마치 인간의 양심이 스스로 만든 장벽 뒤에서 어떻게 현실을 외면하는지를 시각화한 것과도 같다. 루돌프의 가족은 담장 너머의 현실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그 침묵은 가담보다 더 무서운 공범의 형태로 작동한다.
2. 일상이라는 감옥 – 무감각의 구조를 해부하다
이 영화의 가장 섬뜩한 지점은 바로 “잔혹함의 일상화”다. 루돌프의 아내 헤드비히는 수용소 근처의 대저택을 자신의 낙원처럼 여기며, 주변의 폭력과는 완벽히 분리된 세계를 구축하려 한다. 그녀의 삶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 있지만, 그녀는 그것을 인식하지 않으려 한다. 글레이저 감독은 이러한 태도를 통해 ‘무감각’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만들어지는가를 묘사한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세계가 잔혹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익숙함이라는 보호막을 두르고 외면한다. 영화의 카메라는 차갑고 객관적이다. 그것은 어떤 감정도 개입하지 않으며, 마치 감시카메라처럼 인물들을 관찰한다. 이 냉정한 시선은 관객 스스로가 인간의 무감각에 동참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만드는 장치다. 즉, 우리는 담장 안의 사람들을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일상 속 무관심과 편리함으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3. 사운드의 심리학 – 보이지 않는 공포의 언어
《존 오브 인트레스트》의 공포는 영상이 아니라 소리로부터 온다. 영화는 수용소에서 들려오는 총성, 비명, 기계음 등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생활 소음과 겹쳐서 들려준다. 아이들이 웃는 소리 위로 희미하게 들리는 고함, 정원 물줄기 너머로 들리는 절규 — 이 미묘한 사운드의 조합은 관객의 감각을 압박한다. 영화음악 감독 미카 레비(Mica Levi)는 음악 대신 소리 자체를 감정의 악보처럼 사용해, 관객이 보지 않아도 느끼게 만드는 심리적 긴장을 극대화한다. 또한 영화 후반부에서 현대의 아우슈비츠 박물관 장면이 잠시 삽입되며, 현재와 과거가 맞물린다. 이 장면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역사가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함을 상기시키는 ‘현대적 경고’로 기능한다. 글레이저는 “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익숙해질 뿐이다”라는 메시지를 소리의 잔향 속에 남긴다.
결론 – 인간의 무감각, 그 침묵의 공포
《존 오브 인트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2023)》는 잔혹함을 묘사하지 않고도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 강렬한 충격을 준다. 리얼리즘도, 감정적 연민도 배제한 채 오직 관찰의 형식으로 인간의 무감각을 드러낸 이 영화는 “악은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의 선택 속에서 태어난다”는 진실을 잔혹할 만큼 차분하게 전달한다. 루돌프와 그의 가족은 악의 화신이 아니라, 도덕적 마비에 익숙해진 보통 인간의 초상이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은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은유한다. 불의에 침묵하는 이들, 타인의 고통을 스크린 너머 뉴스로만 소비하는 이들, 바로 우리가 그 담장 안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존 오브 인트레스트》는 불편하지만 반드시 봐야 할 영화다. 그것은 우리에게 묻는다 — “당신의 일상은 정말 윤리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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