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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 애니메이션이 그려낸 멀티버스의 철학

by minwon22 2025. 11. 11.

2023년 개봉한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Spider-Man: Across the Spider-Verse)》는 단순한 히어로 영화의 틀을 넘어선, 예술적 실험과 철학적 사유가 결합된 현대적 애니메이션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전작 《Into the Spider-Verse》가 슈퍼히어로의 다양성과 정체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작품은 그 세계를 한층 확장시켜 “운명과 자유의지, 그리고 개인의 선택”이라는 깊은 주제를 탐구한다.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빌려 철학적 담론을 펼쳐낸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시도를 보여준다.

 

 

1. 서사 속 다중세계 – 운명과 선택의 교차로에서

영화의 중심에는 다시 한번 마일스 모랄레스(Miles Morales)가 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과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평범한 십대이자, 또 하나의 스파이더맨이다. 어느 날, 그는 또 다른 차원에서 온 그웬 스테이시(Gwen Stacy)를 다시 만나며 멀티버스의 문이 열린다.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각기 다른 세계에서 온 수많은 스파이더맨들 — 스파이더맨 2099(미겔 오하라), 스파이더-펑크, 인디아 스파이더맨 등 ‘무한한 가능성의 집합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냉정한 규율이 존재한다. 미겔 오하라는 ‘모든 스파이더맨이 반드시 겪어야 할 비극’을 운명으로 규정하며, 이를 벗어나려는 마일스를 위험한 존재로 판단한다. 영화는 이 대립을 통해 운명과 선택의 본질적 갈등을 던진다 — “정해진 비극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스스로의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하는가?” 마일스의 여정은 단순히 세상을 구하는 싸움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재정의하는 철학적 여정이다.

 

2. 시각적 언어의 혁명 – 예술과 철학이 만난 프레임

《Across the Spider-Verse》는 그 자체로 시각 예술의 혁명이다. 각기 다른 세계가 서로 다른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표현되며, 관객은 한 영화 속에서 수십 개의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마일스의 세계는 그래피티풍의 강렬한 색채로, 그웬의 세계는 수채화처럼 감정에 따라 색이 변하는 파스텔톤으로, 미겔의 세계는 디지털 글리치와 네온의 조합으로 표현된다. 이런 스타일의 차이는 단순한 미학이 아니다 — 각 인물의 내면과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상징하는 철학적 장치다. 예를 들어, 그웬의 장면에서 배경 색이 감정에 따라 흐릿해지거나 사라지는 것은, 그녀의 불안과 고립감을 시각화한 연출이다. 또한 빠른 카메라 워크, 비대칭적 프레임, 만화책 질감의 텍스처는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이처럼 영화는 단순히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사고를 이미지로 사유하게 만드는 시청각적 철학서에 가깝다.

 

3. 존재의 질문 – ‘나는 누구인가’라는 궁극의 물음

이 영화의 진정한 중심은 액션도, 멀티버스의 스펙터클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자아 정체성의 탐구다. 마일스는 자신이 ‘특별한’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사실은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능력을 얻은 존재임을 알게 된다. 즉, 그의 탄생은 ‘운명’이 아니라 ‘오류’의 결과였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서 놀라운 전환을 보여준다. “오류로 태어났더라도,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이는 마일스가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며 스파이더맨의 보편적 가치 — 책임, 희생, 용기 — 를 재정의하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그웬과의 관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작동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하지만, 그 경계를 넘어 이해와 공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Across the Spider-Verse》는 결국 슈퍼히어로의 가면 뒤에 숨겨진 인간의 질문,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를 다룬 작품이다.

 

결론 – 애니메이션이 철학이 될 때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Spider-Man: Across the Spider-Verse, 2023)》는 단순히 후속작의 한계를 뛰어넘은 성공이 아니다. 그것은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가 얼마나 깊이 있는 서사와 철학을 담아낼 수 있는지 증명한 예술적 선언문이다. 이 작품은 “히어로의 정체성”을 넘어 “인간의 존재론”을 탐구하며, 관객에게 말한다 — “정해진 이야기 따위는 없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써라.” 마일스 모랄레스의 여정은 결국 모든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각자의 세계에서 겪는 선택, 실패, 성장의 순간들이 곧 하나의 우주를 이루는 조각들이라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Across the Spider-Verse》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아이콘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개성,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찬가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