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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여운 것들 (Poor Things) – 기괴함 속의 여성 자아 탐구

by minwon22 2025. 11. 8.

2023년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주목을 받은 《가여운 것들(Poor Things)》는 그야말로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작품이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Yorgos Lanthimos)는 기존의 서사적 틀을 완전히 깨고, 상식의 경계를 벗어난 세계를 통해 여성의 자아와 욕망, 그리고 자유의 의미를 탐구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독창적인 미장센이나 파격적인 스토리로 평가받는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규정한 ‘여성의 정체성’이라는 틀을 완전히 해체하고, 인간이 스스로의 주체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철학적이고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풀어낸 놀라운 예술 실험이다.

 

 

1. 줄거리 요약 – 죽음에서 다시 태어난 한 여성의 여정

《가여운 것들》는 죽음을 맞은 여성 벨라 백스터(엠마 스톤)가 천재적인 외과 의사 고드윈 백스터(윌럼 대포)에 의해 기묘한 방식으로 부활하면서 시작된다. 그의 실험으로 인해 벨라는 아기의 뇌를 가진 성인의 몸으로 깨어나며,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 처음에는 세상과 자신의 감정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는 점차 욕망과 호기심에 이끌려 세상 밖으로 나아간다. 이후 벨라는 모험적인 남자 던컨 웨더번(마크 러팔로)과 함께 세계를 여행하며, 사랑, 성, 지식, 계급, 자유를 스스로 체험한다. 그러나 여정이 거듭될수록 그녀는 남성 중심 사회가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에 의문을 품고, 결국 ‘누구의 소유도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법’을 깨닫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벨라는 더 이상 순종적이거나 순수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몸과 사유를 스스로 통제하는 여성으로 완성된다.

 

2. 연출과 미장센 – 기괴함 속에 숨겨진 해방의 미학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언제나 비정상적인 세계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연출로 유명하다. 《더 랍스터》와 《킬링 디어》에서도 드러났듯이 그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리며, 인물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푸어 씽스》에서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색채와 디자인은 전혀 고전적이지 않다. 그는 곡선적이고 과장된 건축물, 파스텔톤과 네온빛이 뒤섞인 색감, 어안렌즈를 활용한 왜곡된 시각을 통해 벨라의 심리적 성장 과정을 비유적으로 묘사한다. 세계는 그녀의 시선에 따라 변형되고, 관객은 마치 ‘성장하는 의식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경험한다. 특히 벨라가 사회의 위선과 규범을 깨닫는 장면들은 시각적으로 일종의 해방의 무도회처럼 그려진다. 요르고스는 이 모든 기괴함을 통해 여성의 자아가 사회적 틀을 벗어나면서 얼마나 혼란스럽고 동시에 아름다운지를 표현한다. 기괴함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억압에서 자유로 가는 시각적 언어인 셈이다.

 

3. 주제 해석 – 욕망, 지성, 그리고 여성의 주체성

《가여운 것들》의 핵심 주제는 여성이 스스로의 욕망을 정의하는 과정이다. 벨라는 처음에는 순수하고 무지한 존재로 등장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가 부여한 도덕과 관습의 틀을 거부한다. 그녀는 “행복이란 스스로 결정하는 것”임을 배우며, 남성 중심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간다. 영화 속 남성 인물들은 대부분 벨라의 자유를 두려워하거나 통제하려 한다. 던컨은 그녀의 감정과 몸을 소유하려 하고, 고드윈은 그녀를 실험의 결과물로 본다. 그러나 벨라는 결국 모든 통제를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페미니즘적 선언’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 철학적 여정으로 읽힌다. 요르고스 감독은 이를 통해 “욕망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엠마 스톤은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선을 완벽히 소화하며, 벨라를 상징이 아닌 생생한 인간으로 만들어낸다. 그녀의 연기는 천진함과 광기를 오가며, 관객에게 자유의 본질을 질문하게 한다.

 

결론 – 기괴함으로 완성된 인간 해방의 서사

《푸어 씽스(Poor Things, 2023)》는 단순히 특이한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질, 특히 여성의 주체성을 가장 독창적으로 탐구한 예술적 선언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기괴함과 유머, 철학과 욕망을 섞어 ‘해방’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영화 속 벨라가 보여준 자유는 단순히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몸,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용기다. 《푸어 씽스》는 관객에게 낯설고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바로 그 낯섦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의 근원을 마주하게 한다. 결국 이 영화는 이렇게 속삭인다. “기괴함은 두려움이 아니라, 진정한 나로 향하는 첫걸음이다.”